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리펀트 카시마시 (문단 편집) == 기타 == * 밴드 멤버 4명 중 3명의 고향이자 밴드 활동의 무대였던 [[아카바네]]에서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11월 16일부로 에레카시의 대표곡인 '今宵の月のように'와 '俺たちの明日'가 각각 6호선, 5호선 아카바네역의 [[발차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야모토는 이에 대해 '저는 아카바네에 가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아카바네는 제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향 아카바네역의 발차 멜로디로 우리들의 곡이 사용되는 건 정말 믿기지 않고,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뭔가 아주 따뜻한 기분이 듭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감사를 표했다.[[https://www.cinra.net/news/20181108-eleaka|#]] * 미야모토가 음악적으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RC 석세션]]. 이외에도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같은 밴드의 영향도 받았으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듣고 충격을 받아 반복 청취를 자주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소설을 즐겨 읽으며 거기에서 예술적 감상을 많이 받는것으로 보이는데, [[모리 오가이]]나 [[다자이 오사무]]와 같은 소설가들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모리 오가이를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2006년 발매한 앨범 <扉>의 첫 곡이자 모리 오가이의 일생과 남자로써의 삶을 연관지어 이야기한 <[[역사|歷史]]>라는 곡도 있다. 모리 오가이에 대한 헌정곡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扉>와 <歷史>는 밴드의 무수히 많은 음반과 노래들 중에서도 명반, 명곡으로 꼽히는 작품들 중 하나다. * 이전에는 오로지 밴드 4명만이 라이브 무대에 섰지만 2008년 이후로는 녹음 및 라이브 전용 세션을 두고 있다. 키보드에 츠타야 코이치, 기타에 히라마 미키오, 현악기에 바이올리니스트 긴바라 지에코와 첼리스트 카사하라 아야노를 비롯한 긴바라 지에코 스트링스 팀 멤버들, 관악기에 야마모토 타쿠오 크루를 라이브 세션으로 두고 있다.[* 야마모토 타쿠오와는 2002년 12집 '라이프' 앨범 작업 및 투어를 계기로 현재까지 함께 하고 있다. 그는 [[카우보이 비밥]]의 여러 OST에서 색소폰 연주를 맡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한 해에 앨범을 두 장 이상 발매한 경우가 세번이나 된다. 첫번째는 1988년의 와 , 두번째는 2002년의 <ライフ>와 , 세번째는 2004년의 <扉>와 <風>다. 평균적으로 앨범이 나오는 주기가 평균적으로 1~2년도 채 안되며, 앨범 발매 주기가 3년을 넘긴 경우는 커리어가 완전히 완성된 이후로 볼 수 있는 2012년 에서 2015년의 , 그리고 또 그로부터 2018년의 까지 두번의 사례 밖에 없다. 이중에서 Wake Up은 2020년 현재 밴드의 최신 앨범이다. 다만 밴드의 모든 곡을 작사 & 작곡하는 미야모토 개인의 창작 활동으로 여길 경우, 2020년에 첫 솔로 앨범 <宮本、独歩>가 발매되어 이후로 또 한번 2년 내에 앨범이 발매됐다. * 2004년에 앨범 '扉'의 작업 기간을 다룬 '扉の向こう'라는 TV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는데,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2013년에 'the fighting men's chronicle'이라는 데뷔 25주년 극장판 다큐멘터리도 방영했었다. 이 다큐의 감독은 [[야마시타 노부히로]]다. * 4명의 멤버 중 미야모토 히로지가 유일한 미혼자이다. 나머지 셋은 전부 기혼자이며 이시모리는 3번째 결혼을 했다. 미야모토는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동갑 여배우 '에스미 마키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배우 생활 동안 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잦았고 이 때문에 2017년에 연예계를 은퇴했다.]와 연애한 적이 있었고 현재는 싱글이다. * 이시모리는 항상 미야모토의 장난 표적이다. 공연 도중 선글라스를 뺏기거나, 밀려 넘어지거나, 팔로 치인다거나. 인터뷰 도중에도 볼을 잡힌다거나 하기도 한다. 워낙 미야모토의 움직임이나 언행이 산만하고 활달해서, 공연 도중에 연주를 하고 있는 타카미도리나 토미나가에게 뜬금없이 어깨동무를 하기도 한다. 방송이나 인터뷰 도중의 행동은 장난성이겠지만 라이브 도중의 행동은 '단순 장난'이라기보단 일종의 화이팅을 불어넣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미야모토에겐 신조 7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예는 '옷차림은 언제나 흑백', '자동차는 무조건 [[포르쉐]]', '항상 복근 운동하기', '항상 전신전력을 다해 노래하기'가 있다. 미야모토만의 독특한 보컬 스타일과 음악적 색깔이 만들어진 것에는 '항상 전신전력을 다해 노래하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 하다. * 미야모토의 버릇 중에 머리를 마구 헝클이는 행동이 있다. 이는 학생 때 부터 해온 버릇이라고 하며, 학생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 행동을 해서 해고됐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남자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하고 있다고.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하고있으며, 방송 출연을 할 때에도 어김없이 머리를 헝클어대서 과거에 [[다운타운]]이 진행하는 프로에 출연했을 당시 개그표적이 됐다. * 공연이나 방송 출연 시, 미야모토의 복장은 항상 일관되게 흰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이다. 가끔 검은 와이셔츠나 그위에 검은 정장 재킷을 입기도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옷차림은 흰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바지, 검은 구두이다. 밴드 멤버들도 방송 출연시엔 검은 정장차림으로 통일을 한다. * 미야모토가 무대 위에서 아주 활발하게 종횡무진하는 탓에 마이크 지지대나 스피커 등의 물건 등이 마이크 선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때마다 매번 에레카시의 스태프가 매번 조용히 물건들을 원상복구시키고 들어간다. 초창기때부터 지금까지 매번 동일인물인데, 팬들은 이 스태프의 이름까지 알아내어 공연의 숨은 공로자 혹은 씬 스틸러로 취급하는 모양이다. * 미야모토의 정치적 성향은 우익으로 보인다. 라이브 도중 '''"[[야스쿠니 신사]]로 가자"'''라든지, '''"원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보,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기형|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이 생기기라도 했느냐"라는 무식한 발언들'''을 한 적도 있으며[* 원전 발언은 심지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진지 1년밖에 안지났는데도 저런 말을 한 것이다. 여담으로 '사이토 카즈요시'라는 미야모토와 동년배인 가수가 있다. 카즈요시는 미야모토의 언행과는 대비되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원전 사고]] 이후 공연 중 자신의 노래를 즉석에서 개사해서 일본의 원자력발전소와 도쿄전력 등 전력공사들, 일본 정부의 거짓된 행보와 무능함을 비판한 바 있는데,[[https://youtu.be/oU24iKeLnTU|#]] 카즈요시가 좋아하는 가수 중 하나가 에레카시이며 방송에서 에레카시와 콜라보 공연을 한 적도 있고 에레카시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가하기도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 개인적으로 '''[[이시하라 신타로]][* 이시하라 신타로가 어떤 사람인지 대해서는 항목 참조. 쉽게 말해 망언제조기에 수구꼴통이다. 2022년 사망했다.]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물론 이시하라 신타로가 소설가였기에 작가로서의 그를 좋아하는 것이지만[* 미야모토가 비행기에서 그를 우연히 만난 적도 있다. 그 때 반가워하며 앨범CD를 건네줬다고 한다.], 문제는 이미 미야모토가 두살 때부터 이시하라는 이미 정치인이었다는 것. 우익성향으로 논란이 있는 프로그램이자 [[마츠모토 히토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와이도나쇼'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도 있다. [br]다만 "[[한국]]에서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감동을 받고 울었지만 '김대중 방식'으로 집념깊게 (나의 일을)해 나갈 수 밖에 없다. 정치인과 소설가는 정치와 소설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듯이 음악인인 나는 음악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있다."거나, "김대중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빌 클린턴]]도 멋있지만 김대중 그 분은 대선에서 떨어지고 수렁에 빠졌었다. (그런데도)거기서 한번 바닥을 치고 올라섰으니까. 대단한거다."라든가 "[[모리 요시로]] 총리는 왜 당선된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적도 있고 "고등학생 때는 [[일본사회당(1945년)|일본사회당]][* 지금은 사라진 일본의 [[사회민주주의]], 중도[[진보]]정당.]에 입당해 나라에 개혁을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 적도 있다. 또 [[천황]] 제도를 비판하기도 했으며, 2000년에 공개된 곡인 <ガストロンジャー>에서는 "가면(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벗겨내러 가자"라고 하고, "내가 태어났을 때는 소위 '경제 고도 성장기'의 한 가운데였다"[* 일본이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꾸준히 경제 성장을 한 시기로, 1950~70년대 까지 이어졌으니 미야모토가 태어난 1966년은 경제 고도 성장기의 한 가운데라고 할 만하다. 이 경제 성장기가 지나면서 공공투자와 복지는 부실해지고 환경 파괴와 공해, 각종 질병 및 인구 분포 문제 등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한다.]면서 그 이후 책임자들을 가리켜 "[[쿠로후네 사건]] 이후로 서방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 시키기 위해 [[카미카제]]처럼 번영을 좇았던 인간들"이라고 표현하고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버블 경제]]로 삶의 의욕을 잃은 이들에게 "죽을 때까지가 매일과의 이별이니까, 그것까지 할 수 있는 한 스스로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끝까지 반항해보지 않겠나, 가슴을 펴자고!"라고 한 것을 보면, 데뷔 이후 지금까지 보인 음악적 행보로 봤을 때 단순 정치적 극우라기 보단 개인적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성향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존경하는 모리 오가이의 [[경파]] 정신과 어느정도 맞물리는 부분도 있다. 실제로 미야모토가 에레카시 활동을 하며 내놓은 노래들 가사의 대부분에 사무라이 정신, 절도있는 행동, 대의명분 추구 등 고전적 일본 남성성을 상징하는 테마들이 짙게 녹아있다. 물론 개인 철학과 정치 성향은 별개의 문제이며 야스쿠니 신사 관련 발언이나 원전 관련 발언, 이시하라 신타로 지지와 같은 언행들은 명백히 무식한 행동이고 여타 일본 극우&넷우익들과 다름없는 언행들이었기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위의 원전 발언이 기성세대와 권력층에 대한 비판 곡인 <ガストロンジャー>를 공연하던 도중 한 말이며, 그가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이자 음악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RC 석세션]]의 이마와노 키요시로는 강렬한 원전 반대론자이자 좌익이었다. * 멤버 전부 담배를 피우지만, 그 중에서도 미야모토는 엄청난 골초였다. 앨범 작업을 하면서 하루 종일 녹음실에 있는 경우엔 하루만에 80개비 가까이 피운 적도 있다고. 2012년 급성 난청 발병 이후 완전히 금연했다. * 학생 시절, 타카미도리의 집에 미야모토와 토미나가가 놀러갔는데 타카미도리의 아버지가 타카미도리를 깨우자 타카미도리가 "와도 깨우지 말라고 했잖아!"라며 소리를 질러 집안싸움이 일어났고, 미야모토와 토미나가는 그냥 돌아가며 속으로 '저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데뷔 이전에는 미야모토가 공연 도중 물건을 엎어버리거나, 관객들에게 "시끄러워 멍청아[[https://youtu.be/10_eqnkfqIk?t=9|#]][[https://youtu.be/qvuKhCABfQ0?t=350|##]]", " '[[RC 석세션]]' 정도는 들어라"라고 외치는 등 격한 행동을 보인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연 대기실에서 팬이라며 찾아온 다른 밴드의 멤버가 티셔츠에 싸인을 부탁하자 낙서와 욕설을 적어놓고 라이터로 불태운 적도 있었다. 미야모토는 이후 이런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이런 행동에 대해 2011년 TV프로그램 <신 도모토 형제>에서 "10대 시절에는 관객이 4명 밖에 없는 곳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관객이 박자를 맞춰 주는걸 보면 '이 사람들은 진정으로 내 노래에 박자를 맞춰주고 싶은걸까?'하는 의구심과 복잡한 생각이 들어서 '박자 맞추기 싫은 사람은 안해도 돼!'같은 의미로 한 행동이다."라고 밝혔다. * '엘리펀트 카시마시'라는 밴드명은 딱히 의미가 없다고 한다. 영화 'Elephant Man'과 일본의 만담 트리오 [[https://ja.wikipedia.org/wiki/%E3%81%8B%E3%81%97%E3%81%BE%E3%81%97%E5%A8%98|카시마시 딸]]에서 따왔다고 한다. * 토미나가가 2006년 만성 경막하 혈종이 발병한 적이 있었다. 현재는 완치된 상태. * 미야모토의 차는 2009년 기준 총 7번 바뀌었는데, 전부 [[포르쉐]] 차량이다. "자동차는 무조건 포르쉐"가 본인의 신조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차를 바꿀 때 마다 점점 구형 모델로 변한다고. 처음 구입한 차량은 [[포르쉐 911/클래식 911#s-2.9.2|포르쉐 카레라 RS 클럽 스포츠]]와 [[포르쉐 박스터#s-2.1|포르쉐 박스터 초기형]][* 두 대 모두 재산 사기를 당해서 처분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차량은 [[포르쉐 914]], [[포르쉐 718 박스터#s-2.3|포르쉐 718 박스터 스파이더]]다. 운전을 하게 된 계기가 재밌는데,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답시고 자동차도 사지 않고 에어컨도 집에서 떼버렸지만 '더위를 피하기 위해 샤워를 하는 것이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것'이라는 모순을 깨닫고 결국 33세가 돼서야 면허를 취득했다. 면허를 딴지 얼마 안됐을 때는 하루에 230km를 넘게 달릴 정도로 운전 광이었다고 한다. 2010년에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서킷 데뷔 주행도 했다. * 미야모토가 2012년 앨범 가 발매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급성 난청이 발병해 라이브를 무기한 중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브 복귀에 성공했다. 난청 발병 이후 음색이 약간 바뀌었다. * 미야모토가 밴드의 리더이자 모든 곡을 작사&작곡 하지만 [[기계치]]인지라 앨범 작업 시 프로듀싱 장비들을 다루는 건 이시모리의 몫이라고 한다. * 공연 시 이시모리의 기타치는 자세가 참으로 묘하다. 두 다리를 거의 ┌┐모양으로 벌리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또 30년의 세월 동안 머리 모양에 변화가 매우 잦았기 때문에 이시모리의 모습 변화도 밴드 공연 시 보는 재미 중 하나였다. 2018년 이후로는 평범한 짧은 머리를 유지 중이다. * 2006년 앨범 <扉>을 발매할 쯤 미야모토가 재산을 빼앗기는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금전 관리를 맡겼다가 당한 것인데 이 때문에 소유한 아파트(자택), 책, 포르쉐 차량 두대를 매각했고 당시 남은 돈은 현찰 3000엔이 전부였다고. 시부야에서 산책을 하던 도중 사기를 친 당사자를 만났는데, 미야모토는 그 사기꾼에게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 2008년 19집 앨범 '昇れる太陽'가 발매해서 '스즈키 마유코'라는 DJ가 진행하는 생방송 라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때 스즈키의 말에 미야모토가 화를 내서 잠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스즈키가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며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앨범 구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메인디쉬로 채워진 느낌이다. 얼핏 듣기에는 먹기 힘든 느낌이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이렇게 맛있는 것도 없다 싶은 느낌...''''이라고 말하자 미야모토가 정색하며 '(지금 공개적으로)사람들 앞에서 먹기 힘들다고 말했네요.'라고 대답한다. 이 말을 들은 스즈키가 곧바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미야모토는 ''''무례한 녀석이네, 이 녀석은...''''이라고 욕을 해버린 것. 그러자 스즈키가 당황한 채로 웃으며 '정말 그런데 왠지...'라며 말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미야모토가 ''''먹지마''''라고 나지막이 말한다. 이에 스즈키가 '먹었어요, 이제. 너무 많이 먹어서 보답해드릴 수는 없지만...'이라고 미야모토의 신경을 긁자 미야모토가 웃으면서 '토해버려'라고 응수한다.[br] 스즈키가 '그건 좀 아깝기 때문에... 그렇지만 어쩐지 그런 앨범이 아닐까 해서...'라고 멘트를 이어가던 도중 미야모토가 굳은 표정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자 미야모토를 부르는데, 미야모토가 '네?'라고 대답하자 ''''지금 딴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말을 해버린다. 미야모토가 '딴 생각이라고 할까... 그런...'라고 대답하고, 이후 몇 초 간 정적이 흐른다. 라디오가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던 것을 고려하면 방송사고나 다름없는 상황. 그러자 미야모토가 분위기를 추스리려는 듯 '뭐, 나쁜 의도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스즈키가 ''''네... 시비거는 거예요, 지금?''''이라고 말하며 빼도 박도 못하는 방송사고로 이어진다. 그러자 제대로 열받은 미야모토가 ''''싸움이 아니잖아. (시비는)네가 걸고 있잖아, 이 바보야.''''라고 나지막하게 쏘아붙이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다. 스즈키는 '아뇨 아뇨'하며 빠져나가려 하지만 미야모토가 ''''조심해라, 이 멍청아''''라고 내뱉어버리며 대화를 끝내버린다. 하지만 스즈키는 '시비거는 거 아니에요'라고 대꾸하고 멘트를 이어나간다. 그런데 그 멘트라는게 '그런 앨범이 나왔는데, 또 당하고 말았네요, 3년 전인가?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항상 미야모토 씨한테 식은 땀을 흘리게 돼버리는 군요.'라는 것.[br] 이렇게 어찌어찌 상황이 종료되지만,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라디오에서 말싸움, 욕설, 오디오의 공백까지 방송사고 필수 요소들이 제대로 터져버린지라 논란이 커졌다. 결국 두 사람 모두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물론 화를 내거나 욕설을 한 것은 미야모토지만, 스즈키가 새 앨범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부터 '시비거는 것이냐'는 말까지 하며 제대로 사건을 키웠고, 마지막 멘트까지 은근한 조롱으로 이어지는 등 방송 내내 무례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에, 현재는 '미야모토도 잘한 건 아니지만 책임과 원인은 스즈키에게 있다', '게스트를 저런 식으로 대하니 미야모토가 화를 낼 만도 한 일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https://youtu.be/x0UT3gH4xVU|해당 방송사고 영상]][[https://newspo24.com/7705.html|참고 링크]] * 위에서 스즈키가 언급한 '3년 전' 사건은 그 때도 미야모토가 스즈키의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나왔을 때로, 에레카시가 인터넷 방송으로 공연을 진행하는 컨텐츠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스즈키가 이걸 CD로도 발매하길 원한다며 무리한 요구를 자꾸 한 탓에 미야모토가 ''''그러니까 저기, 사람 말을 좀 들어''''라고 대응했던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해당 방송에서 미야모토의 라이브가 있었는데, 라이브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에레카시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스즈키가 '엘리펀트 카시마시입니다, 어서요.'라고 강압적으로 진행시켰다. 라이브가 끝난 후 미야모토는 방송 내내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 이 둘의 갈등은 2008년 해당 사건으로부터 11년전인 1997년에 미야모토가 처음으로 스즈키의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스즈키가 '미야모토가 일본의 유명 음악 잡지 Rockin' On의 편집장 시부야 요이치에게 자신이 천재라는 내용이 담긴 팩스를 보냈다고 한다'는 내용의 '''헛소문'''을 듣고는 이걸 그대로 생방송에서 질문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방송이 진행된 1997년은 에레카시가 1995년 EPIC 레코드에서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당하고 난 후, 1996년에 포니캐년과 계약한지 1년밖에 안됐을 때다. 그러므로 스즈키의 질문은 1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무소속이었던 미야모토가 자신을 띄워달라며 유명 잡지 편집장에게 지속적으로 자기자랑을 했다는 내용의, 그야말로 미야모토 개인에 대한 모욕을 넘어 밴드 존속 여부가 흔들리던 힘든 시절까지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리는 헛소문을 생방송에서 대놓고 퍼뜨려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유명 잡지에 아첨해서 재활동이 가능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 오히려 Rockin' On 잡지는 편집장 시부야 요이치를 중심으로 에레카시가 '''데뷔할 때부터''' 크게 주목하며 고평가했고 지금또한 그렇다. 그리고 에레카시가 EPIC레코드에서 계약 해지를 당할 때 Rockin' On 측에서 직접 소속사 사무실(현재 '페이스 뮤직 엔터테인먼트')을 따로 차려서 밴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직접 나서서 도와줬다. 에레카시가 Rockin' On에 빌붙은 게 아니라, 반대로 Rockin' On이 먼저 에레카시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준 것이다. 그러니 애당초 미야모토가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조차 없었다.] 미야모토는 '아니요. (그런 짓을 한건)제가 아니에요. 전 그런 적이 없어요.'라며 대답하며 점점 목소리가 싸늘해졌고, 스즈키는 '저는 팩스 사용할 줄 모르는데, 미야모토 씨는 팩스 사용하는 법 알아요?'라는 둥 미야모토를 완전히 무시하는 뉘앙스의 질문까지 한다. 이후로도 이 불편한 상황은 끝나지 않는데, 미야모토가 게스트인데도 불구하고 화제를 전환하려고 '좋아하는 음식은 불고기와 카레입니다'라고 말을 하자 이에 스즈키가 '아, 진한 것을 좋아하시는군요'라고 대답하고, 미야모토가 '그럼요, 진하죠'라고 무미건조하게 맞장구치자 스즈키는 ''''아침부터 먹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라고 대놓고 조롱한다. 이에 화가 난 미야모토는 ''''당신 취향이 어떻든 그딴 건 상관없다''''라고 응수했다. * 일본의 1세대 얼터너티브 록밴드 답게 [[미스터 칠드런]], [[스핏츠]]와 친분이 있다. 데뷔 30주년 콘서트에서는 이 두 밴드를 동시에 초대해 합동 공연도 펼쳤다. 1998년에 음악 잡지 Bridge에서 미야모토 히로지와 스핏츠의 보컬 [[쿠사노 마사무네]]가 함께 인터뷰를 나눈 적도 있다.[[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rairi&logNo=70030238733&proxyReferer=http:%2F%2Fm.blog.naver.com%2F|인터뷰 한글 번역 링크]] 이들을 중심으로 한 일본 얼터너티브 록 1세대 밴드들이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다. 여담이지만 해당 인터뷰에서 미야모토가 밝힌 바로는 토미나가가 술에 취해 장난으로 이시모리를 때려서 코피가 나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분류:일본의 록밴드]][[분류:4인조 음악 그룹]][[분류:1981년 결성된 음악 그룹]][[분류:1988년 데뷔]][[분류:아뮤즈 소속 아티스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